제로웨이스트

제로웨이스트가 아닌 것 같은 제로웨이스트

wavy-days 2025. 7. 27. 18:52

‘제로웨이스트’라는 이름이 모든 걸 정당화할 수 있을까?

‘제로웨이스트’는 더 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이제는 생활 트렌드이자, 브랜드 마케팅의 중심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단어가 너무 널리 사용되다 보니

그 본래 의미가 왜곡되거나 희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로웨이스트란 쓰레기를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극단적 실천이 아니라,

가능한 한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의 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철학적 접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제로웨이스트 제품’이나 ‘제로웨이스트 브랜드’는

오히려 새로운 소비를 부추기고, 불필요한 제품 생산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번 쓰고 버릴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은 좋은 시작이다.

그러나 '제로웨이스트 전용 텀블러'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고가 텀블러를 구매하게 만드는 구조는 과연 환경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같은 논리로 고체 샴푸바를 담는 전용 보관함, 대나무 칫솔 전용 거치대,

친환경 에코백을 계절별로 디자인 다르게 수집하는 행위 등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환경을 위한 소비’라는 명분 아래 새로운 소비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이 글에서는 겉보기엔 제로웨이스트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본래 의미와는 거리가 멀거나, 구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문제 사례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단순한 비판이 아닌, 실제 실천자들이 겪는 현실적 문제와 시스템적 한계,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제로웨이스트가 아닌 것 같은 제로웨이스트

 

소비를 줄이기는커녕 유도하는 제로웨이스트 마케팅의 실체

현재 제로웨이스트 관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성장의 중심에는 ‘소비 중심의 실천’을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제로웨이스트 입문 세트’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수십 개의 제품이다.

이 세트 안에는 고체 치약, 고체 샴푸, 리필 용기, 전용 솔, 전용 받침대, 세척 브러시 등

실제 실천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포함되어 있다.

 

제품을 구매한 사람은 그 순간 ‘나도 이제 실천자’라는 안도감을 갖게 되지만,

정작 그 제품 중 절반 이상은 사용되지 않고 집안 어딘가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지속 가능한 실천이 아니라,

'친환경 소비'라는 환상을 파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브랜드는 ‘지속가능성’을 외치지만,

끊임없는 신제품 출시와 시즌 한정 패키지, 한정판 텀블러, 굿즈 마케팅 등으로 소비자를 자극한다.

 

에코백만 해도 그렇다.

하나로 충분한 제품이지만, 소비자들은 브랜드마다 다른 로고와 컬러, 디자인에 끌려 여러 개를 구매하게 된다.

결국 소비량은 줄지 않고, 쓰레기 유형만 바뀌었을 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혼란이 발생한다.

‘나는 환경을 위한 소비를 했는데 왜 죄책감이 들지?’ 하는 모순된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제로웨이스트는 근본적으로 덜 사기 위한 실천임에도 불구하고,

마케팅은 더 사야만 실천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 지점에서 제로웨이스트는 ‘실천’이 아니라, ‘상품’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환경에 대한 문제 해결보다는, 새로운 소비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된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오히려 특권이 되는 구조적 문제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비용과 접근성이다.

고체 치약이나 대나무 칫솔은 일반 제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구입처도 한정적이다.

 

리필숍은 대도시에만 몰려 있고, 지방이나 농촌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환경 의식이 높은 일부 계층의 전유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SNS에 올라오는 제로웨이스트 실천 사례들을 보면,

인테리어가 세련된 주방, 고급 친환경 용기, 자연광이 비치는 욕실 같은 ‘이미지 중심의 실천’이 주를 이룬다.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실천 의지가 있는 사람마저도 좌절하게 만든다.

“나는 친환경 제품을 살 수 없어”, “우리 동네에는 리필숍이 없어”, “시간도 없고 비용도 부담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환경 실천은 본래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의 제로웨이스트 구조는 그렇지 않다.

사회적 불평등과 연결된 ‘실천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환경 운동의 확장성 자체를 위협한다.

 

게다가 일부 기업은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고가의 '지속가능 패키지'나 '친환경 럭셔리 브랜드'를 통해,

실천을 일종의 소비 권력의 표현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것은 실천이 아니라, 이미지와 권위를 소비하는 구조로 변질된 사례다.

제로웨이스트가 단지 ‘의식 있는 사람들의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로 머물게 된다면,

대중적 확산은커녕 실천자끼리의 고립만 불러올 것이다.

 

진짜 실천을 위한 제로웨이스트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이제는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제로(Zero)’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실천 가능성과 지속성을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실천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덜 쓰고, 오래 쓰고, 다시 쓰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고가의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지금 가진 컵과 용기를 오래 쓰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제로웨이스트다.

이 철학은 ‘소유의 방식’보다 ‘사용의 방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브랜드나 플랫폼도 다시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소비자에게 정말 필요한가?”, “이 제품이 소비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가?”라는 기준을 갖고

기획과 마케팅을 해야 한다.

 

동시에 소비자도 스스로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 필요해서 사는가, 아니면 실천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사는가?” 이런 질문이 쌓이면,

실천은 더 건강해지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리필 인프라 확대,

저소득층을 위한 실천 지원 정책, 제로웨이스트 교육 확대 등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실천자들은 서로 비교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다양한 실천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제로웨이스트는 완벽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꾸준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할 때,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진짜 제로웨이스트는 더 많이 사는 게 아니라, 덜 사는 데서 오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