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와 기업의 책임, 친환경 포장 실태 분석
제로웨이스트는 개인의 몫만일까? 기업은 책임이 없는가?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점점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은 일회용품을 줄이고, 재사용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며, 분리배출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커피를 마실 때 텀블러를 들고 가고, 플라스틱 대신 유리병에 담긴 제품을 선택하는 등의 행동은
환경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실천으로 옮긴 결과다.
그러나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핵심은 단순히 소비자의 행동 변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소비를 만들어내는 생산 구조, 특히 기업의 역할과 책임이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의 포장은 대부분 소비자가 아닌 기업이 결정한다.
과대포장, 복합재질 사용, 불필요한 일회용 포장재는 기업이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만든 결과다.
소비자는 그것을 수동적으로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을 뿐,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따라서 제로웨이스트가 진정으로 의미 있으려면, 개인 실천과 함께 기업의 구조적인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문제는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친환경’이라는 키워드를 마케팅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회용 컵에 'I'm not plastic'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생수병에 친환경 스티커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일회용 플라스틱을 감싸고 있는 비닐을 분리 배출하라고 적어놓고서는
막상 비닐이 접착제 때문에 떨어지지 않아 분리배출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소비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제품을 감싸는 포장이 다층 플라스틱이나 라미네이트 재질이라면,
그 제품은 결국 쓰레기로 직행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정말 친환경을 실천하는 기업은 얼마나 되는가?”
이 글은 지금 우리 주변의 친환경 포장이 실제로 얼마나 지속가능한지를 점검하고,
그 책임이 어디까지 전가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려는 시도다.
‘친환경 포장’이라는 말 속에 숨겨진 제로웨이스트의 불편한 진실들
요즘 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을 보면 ‘친환경 포장’이라는 문구가 흔하게 보인다.
어떤 제품은 종이로 만든 포장재를 사용했다고 하고,
어떤 제품은 식물성 플라스틱을 활용한 친환경 패키징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포장재가 실제로 재활용 가능하거나 생분해되는가? 하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그 '친환경 포장'은 마케팅을 위한 이미지일 뿐,
실질적인 환경 부담은 여전하거나 오히려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친환경 종이 포장재’다.
종이 포장재는 언뜻 재활용이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코팅 처리된 종이나 점착제, 혼합 소재가 사용되어 분리배출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특히 택배 완충재로 사용되는 에어캡 대신 ‘종이 완충재’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내부에 접착제나 코팅 필름이 포함되어 있다면 일반 폐지로 처리할 수 없다.
플라스틱을 줄이려다가 오히려 비용은 증가하고, 재활용성은 떨어지는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PLA 생분해 플라스틱’이다.
옥수수 전분이나 사탕수수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산업용 고온 퇴비화 시설에서만 분해가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일반 쓰레기로 처리되고, 매립지에 그대로 남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생분해된다”는 문구만 보고 안심하지만, 실제 환경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실태는 ‘친환경 포장’이라는 말의 신뢰성을 근본부터 의심하게 만든다.
기업이 진정한 친환경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환경 불안감을 덜어주는 수준에서 멈추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실천을 왜곡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이 사용하는 포장재의 전체 수명 주기와 실제 재활용률,
처리 가능 구조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린워싱과 소비자의 혼란, 그리고 제로웨이스트 신뢰의 붕괴
이처럼 친환경 포장을 가장한 마케팅 전략은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점점 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린워싱이란 실제로는 환경 보호에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친환경적인 이미지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행위를 말한다.
문제는 이러한 그린워싱이 기업의 마케팅 포지션만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실천 의지까지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많은 소비자들은 정성껏 분리배출을 하고, 리필 제품을 선택하며, 친환경 포장 제품을 골라 구매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알게 되는 것은,
내가 믿고 선택한 제품이 실제로는 분리배출이 불가능하거나,
실제 환경에서는 전혀 분해되지 않는 재질이라는 사실이다.
이때 생기는 상실감과 회의감은 실천 자체를 멈추게 만들 수 있다.
"내가 노력해도 소용이 없구나", "다 가짜였구나"라는 인식은 사회 전체의 친환경 전환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된다.
또한, 기업의 불분명한 표기 방식은 소비자에게 과도한 정보 탐색 부담을 준다.
포장지에 ‘친환경 소재 사용’이라고 적혀 있어도,
정확히 어떤 소재인지, 어떤 조건에서 재활용 가능한지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실험실 기준의 분해 실험이나 포장공학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마케팅 문구에 의존한 감정적 소비를 하게 된다.
이는 실천보다 ‘느낌’을 따라가는 소비로 이어지고, 제로웨이스트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 모든 과정은 궁극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이어진다.
진정으로 실천하려는 소비자들은 자신이 속았다고 느끼고, 그 기업의 제품을 회피하게 된다.
따라서 기업이 환경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그럴듯한 말’이 아닌 ‘실질적 데이터와 구조적 개선’으로 승부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제품을 구매할 때 더 이상 표면적인 문구에 안주하지 않고,
기업의 투명성·정직성·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기업의 진짜 제로웨이스트 책임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가
제로웨이스트가 사회 전체의 방향성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브랜드는 “소비자가 분리배출을 잘해야 재활용이 가능하다”,
“고객이 친환경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작 제품의 재질을 복합 소재로 설계하고, 재활용이 어려운 구조로 만든 주체는 기업 자신이다.
따라서 소비자보다 먼저 구조를 바꾸어야 할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이 진짜 책임을 다하려면,
첫째로 제품 기획 단계부터 ‘회수 가능성’을 고려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
재질을 단일화하거나, 손쉽게 분리 가능한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둘째로는 소비 후 회수 시스템을 직접 운영하거나, 지역 사회와 협력해 재활용 경로를 구축해야 한다.
이미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기업이 제품 포장 회수에 대한 의무를 부담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구조를 더 강화해야 한다.
셋째로는 포장재와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단순히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무슨 재질인지,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분해되는지를 명확히 안내해야 한다.
브랜드 사이트나 패키지에 QR코드를 삽입해
재활용 방법을 영상으로 제공하거나, 사용자에게 포장재 분리 배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채널도 함께 제공할 수 있다.
소비자 역시 더 이상 수동적인 선택자에 머물러선 안 된다.
우리는 기업에 다음을 요구할 수 있다.
“친환경이라고 말할 거면, 데이터로 증명해라.”
“포장을 바꾸는 데 돈이 든다고 하지 말고, 지금 만드는 쓰레기의 비용을 계산해봐라.”
“마케팅이 아니라 구조로 보여줘라.”
이러한 요구가 누적될 때, 기업은 마침내 변화한다.
제로웨이스트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기업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책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은, 결국 소비자의 깨어 있는 시선과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