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도시의 탄생: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 모델
도시가 기후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는 이유
지구촌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70% 이상이 도시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바로, 도시가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이자, 동시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대라는 점이다.
제로웨이스트 도시라는 개념은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다.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란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 자원을 순환시키며, 재활용과 재사용을 생활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단순히 개인의 실천으로는 그 효과에 한계가 있다.
도시 단위에서 제로웨이스트 전략이 통합적으로 시행될 때,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의 새로운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제로웨이스트 도시가 어떤 구조와 정책으로 운영되는지, 실제 사례는 무엇이며,
이 도시 모델이 기후위기 해결에 어떤 실질적 효과를 내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도시 단위에서의 변화는 곧 수백만 명의 시민 삶을 바꾸는 것이며,
이는 장기적인 기후정책보다 훨씬 빠르고 직접적인 결과를 낳는다.
제로웨이스트 도시의 구조: 어떻게 가능한가?
제로웨이스트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쓰레기 분리배출’을 잘하는 수준을 넘어,
도시 전반의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첫째, 폐기물 관리 시스템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단순히 수거하고 소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수거 단계부터 분리 정밀도를 높이고, 재활용과 재사용 중심의 시설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도시계획 차원에서 ‘재사용 가능한 도시’를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은 일회용품을 전면 금지하고,
도시 곳곳에 리필 스테이션과 공용 텀블러 대여소를 설치하는 등의 인프라가 필요하다.
셋째, 제로웨이스트 정책이 시민 교육과 연계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민의 참여 없이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제로웨이스트 도시들은 초등학교부터 ‘순환경제’와 ‘자원 절약’을 교육과정에 포함하고 있다.
넷째, 지역 기업과의 협력도 핵심이다. 식당, 카페, 소매점 등에서 포장재 없는 제품 판매를 장려하거나,
다회용 용기 반환 시스템을 도입하면 도시 전반의 폐기물 발생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처럼 도시 단위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행정, 교육, 산업, 시민사회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다층적인 구조가 필요하다.
일본 가미카쓰: 쓰레기를 분해하는 제로웨이스트마을의 철학
일본 도쿠시마현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 가미카쓰(Kamikatsu)는 인구 1,500명도 채 되지 않는 소규모 농촌 지역이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제로웨이스트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가미카쓰는 2003년에 일본 최초로 “제로웨이스트 선언”을 발표하며,
2020년까지 매립과 소각 없이 모든 폐기물을 자원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마을의 가장 독특한 점은 바로 45가지 분리수거 체계다.
주민들은 유리, 캔, 종이, 플라스틱 등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병뚜껑과 라벨, 금속과 나무 등도 별도로 구분해 배출한다.
수거 시스템 없이 모든 주민이 직접 마을 재활용센터에 쓰레기를 가져다주고, 종류별로 정리하는 자발적인 참여 구조가 중심이다. 이로 인해 쓰레기의 80% 이상이 재활용되며, 소각장이 필요 없어졌고 탄소배출도 크게 줄었다.
이 마을의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제로웨이스트'가 행정 지시가 아니라, 공동체 문화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불편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원 순환의 의미와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세대 간에 공유되고 있다.
또한, 가미카쓰는 쓰레기 문제를 넘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관광 자원화에도 성공했다.
구루구루숍이라는 물건을 순환시키기 위한 샵을 만들어 재활 주민들이 불필요한 물건을 반입하고,
마을에 방문하는 이들 누구나 무료로 가져갈 수 있게 해뒀으며,
폐자재를 이용한 숙박시설(제로웨이스트 호텔)은 이 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가미카쓰는 기술보다 사람의 참여가 도시를 변화시킨다는 대표적 사례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제로웨이스트 모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도시형 제로웨이스트 정책의 정석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는 제로웨이스트 정책을 체계적으로 도입해
대도시 규모에서도 실행 가능한 모델을 제시한 대표적인 도시다.
2009년,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제로웨이스트를 도시 전략으로 채택하고,
2020년까지 쓰레기 매립 제로를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시는 법령과 인프라를 동시다발적으로 개편했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은 의무 음식물 쓰레기 분리 수거 제도다.
가정, 식당, 기업 등 모든 곳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도록 의무화했고,
이를 통해 음식물 쓰레기의 90% 이상을 비료로 재활용하고 있다.
또한, 음식서비스의 폐기물 감량 조례를 시행하여 식당, 카페 등에서는
테이크아웃시 재활용 및 부패 가능한 용기만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
샌프란시스코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재활용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Recology(리콜로지)라는 민간 폐기물 처리 기업과의 협업이 있다.
이 회사는 수거부터 분류, 재활용까지 모든 과정을 데이터 기반으로 운영하여 자원 순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 지역을 중심으로 환경 교육 프로그램과 리워드 시스템을 도입해 시민 참여를 유도한 점도 매우 인상 깊다.
결과적으로 샌프란시스코는 2023년 기준, 전체 쓰레기의 약 80% 이상을 재활용 및 재사용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대도시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대규모 도시도 충분히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며,
정책-산업-시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성공적인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도시의 확장성과 미래 전략
제로웨이스트 도시 모델은 더 이상 실험적인 개념이 아니다.
전 세계 수십 개 도시가 이미 실천 중이며, 기후위기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모델을 어떻게 더 많은 도시로 확산시킬 것인가이다.
첫 번째 전략은 국가 정책과의 연계다.
앙정부는 제로웨이스트 도시를 선정하고 재정 및 기술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지자체가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도시 간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다.
유엔 지속가능도시 네트워크(ICLEI)처럼, 제로웨이스트 도시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더 빠른 확산이 가능하다.
세 번째는 기술과 디지털 플랫폼의 활용이다.
쓰레기 추적 시스템, AI 기반 분리수거 로봇, 디지털 리워드 앱 등을 통해 시민 참여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식의 변화다.
도시가 아무리 잘 설계되어 있어도, 시민이 이를 이해하고 동참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제로웨이스트 도시는 단지 '깨끗한 도시'를 넘어,
‘탄소중립 도시’, ‘생태회복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라는 개념으로 진화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도시를 시험에 들게 하지만, 동시에 도시가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제로웨이스트 도시 모델은 바로 그 대안 중 하나다.